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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제국의 멸망원인

해몽자 2023. 3. 17.

잉카제국의 명말원인은 무엇일까요? 잉카제국의 멸망원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잉카제국의 멸망원인

 

<잉카제국의 멸망원인>

잉카제국은 12세기 페루의 쿠스코를 수도로 하여 잉카족이 세운 나라입니다. 잉카제국이 멸망한 원인은 스페인(에스파냐)의 '피사로'가 추진한 잉카제국 정복전쟁에서 화약무기나 철제무기가 없어 결국 무기의 열세로 패배했기 떼문입니다. 

 

 

잉카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들어온 피사로는 친선을 맺기 위해 왔다고 거짓말을 한 뒤 잉카제국의 황제를 숙소로 초대했습니다. 이 때 몰래 숨겨 놓은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황제를 포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황제를 빌미로 수많은 금과 은을 잉카인들에게 빼았습니다.

 

 

그 뒤 피사로는 이교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황제를 죽여버리고 잉카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잉카군은 그 뒤에 1년 동안 쿠스코를 포위하며 에스파냐군과 싸웠고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비르카밤바라 골짜기에 태양 신전을 건설하고 에스파냐군에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열세로 몰린 잉카인들은 에스파냐군의 공격을 피해 태양 신전과 함께 점점 깊숙한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결국 잉카제국은 최후의 황제 투파크 아말이 처형되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정복자 피사로가 이끈 에스파냐군은 고작 180여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잉카제국의 왕 아타왈파는 3만여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사로가 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총의 보유와 기마술 덕분이었습니다.

 

잉카제국은 에스파냐(스페인)군에 의해 1535년에  제국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잉카문명 발견>

1911년 미국의 탐험가이자 역사학자인 하이림 빙엄이 페루 안데스 고원의 우르밤바계곡 (해발 2280m)에서 공중 도시인 마추픽추 유적지를 찾아낸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이곳이 잉카문명 최후의 유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총 면적이 5㎢인 마추픽추는 도시의 절반 가량이 경사면에 세워져 있고 주변은 성벽으로 견고히 둘러싸여 요새의 모양을 갖추고 있으며, 잉카제국이 번영한 시기인 1438년~1532년 사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 약 1만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추픽추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유적지로서, 태양의 신전, 산비탈에 조성된 계단식 밭, 지붕없는 집, 농사에 이용한 태양시계, 콘돌바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이 있으며, 발견할 당시에 1,000여구의 여자 미이라가 있었다고 합니다. 

 

 

잉카제국은 10세기 중엽 안데스 고원지대(지금의 페루, 콜롬비아, 칠레 일대)에서 일어났으며, 12세기 망코카팍이 잉카부족을 이끌고 페루의 쿠스코에 정착하여 쿠스코가 잉카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450년 이후 잉카제국은 급속히 번영하여 수많은 부족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수도인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1471년경, 잉카제국은 중앙 안데스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했습니다.

 

 

잉카인들은 유럽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명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비록 고원 지대였지만 완벽한 관계 시설을 갖추고 있어, 공동으로 대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었으며, 토목 기술도 발달해 수로와 도로망을 건설했고 건축술도 정교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술도 발달하여 뇌수술도 해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찬란했던 잉카문명은 1532년,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와 무기를 가진 에스파냐(스페인) 병사들 앞세서 무기의 열세로 1535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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