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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군6진 위치 세종대왕 4군6진 개척

해몽자 2023. 5. 15.

오늘날 한반도 국경선을 확정지은 북방 영토 4군6진은 위치가 어디인지와 세종대왕이 4군6진 개척한 과정에 대해 살펴보 겠습니다.

 

 

<4군6진 위치>

4군은 압록강 상류에 설치되었는데요, 4군은 압록강 상류인 여연, 무창, 자성, 우예 지역을 말합니다. 이 곳은 조선 초기부 터 여진족의 침입이 잦던 지역으로 1차 야인 정벌과 2차 야인 정벌을 통해 여진족을 몰아내고 4군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6진은 두만강 하류에 설치되었는데요, 6진은 두만강 하류인 종성, 온성, 회령, 경원, 경흥, 부령 지역을 말합니다.

 

 

<세종대왕 4군6진 개척 과정>

① 4군 개척 과정

압록강 부근의 여진족들은 사납게 굴었으며, 1432년 여진족의 추장 이만주가 칩입해 왔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1433 년(세종 15년), 세종은 최윤덕 장군(1376~1445)을 평안도 절제사로 삼아 압록강 부근을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최윤덕은 황해도와 평안도의 병사 1만 5,000여 명을 이끌고 나가 압록강을 건너 파저강까지 진격했으며 큰 전과를 올 렸는데, 이것이 바로 1차 야인 정벌이며, 최윤덕은 태종대에 이미 설치되었던 여연군과 강계부 사이에 자성군을 설치하고 돌아왔습니다. 

 

 

1차 야인 정벌 이후 또 여진족이 압록강 너머로 침입하자 세종은 1437년 9월, 도절제사 이천(1376~  1451)에게 명하여 여 진 세력을 완전히 꺾도록 하였습니다. 이천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여진족을 크게 무찔렀는데요, 이것이 바로 2차 야인 정벌입니다. 

 

 

이천의 2차 야인 정벌 후 조선은 여연군 동쪽에 무창군을 설치했으며, 1443년 여연군과 자성군 사에에 우예군을 설치하여 4군을 완성하므로써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조선의 영토가 탄생하였습니다.

 

 

② 6진 설치 과정 

두만강 방면은 조선 왕조 초기부터 이성계 부자가 이미 닦아 놓은 터전이기 때문에 우리의 세력이 미치고 있었습니다. 태조는 여진족 출신 장수인 이지란으로 하여금 공주와 갑주에 성을 쌓도록 하여 그 일대를 조선의 영토로 끌어들였습니다. 

 

 

그 뒤 여진의 침입이 잦자 동북 방면의 국경선을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종 4년(1422년)에는 국경선을 더 남쪽의 융 성으로 후퇴하자는 대신들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김종서가 반대했고, 세종 역시 조상의 강토를 한 치도 내줄 수 없다며 북 쪽 국경을 굳게 지킬 것을 명했습니다.  

 

 

이에 김종서 장군은((1383~1453)은 스스로 함길도 절제사를 청하여 1433년 동북면의 야인 정벌에 나섰습니다. 그 뒤 여진 족 간의 내분을 틈타 공격하여 여진족을 정벌하고 회령 서쪽의 여진족 진지를 모두 차지하고 동북의 옛 경원 땅을 되찾았습 니다. 

 

 

김종서는 두만강 부근에 여섯 곳의 진을 설치하였는데요, 이것이 바로 6진(종성, 온성, 회령, 경원, 경흥, 부령)입니다. 김종 서의 6진 개척에 발맞추어 세종은 함길도 지방의 백성을 6진에 옮겨 살도록 했으며, 각 지방에서 이민을 모집했고, 남족 백 성들도 6진에 옮겨 살자 두만강 부근은 조선의 영토로 굳혀졌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4군6진의 개척으로 세종대왕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실상 한반도의 국경선으로 확정짓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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